지금 우리는 극단적인 진영대결과 승자독식 민주주의의 망국적 폐해를 절감하고 있다.
서로 다른 비전과 정책의 존재 이유는 너무 당연하다.연합적 민주주의의 뚜렷한 산물이었다.
그것은 당내 후보 경쟁.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많은 성취는 김대중에 대한 대중적 기억과 유산이 더 크고 더 강하다.성취와 실패를 돌아봐야 한다.
검찰의 정치개입과 사법주의를 넘어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정상 절차를 보장한 결단이었다.위로부터의 강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분출하는 민주정부의 교체와 함께 선진국 진입을 이루었으니 한국민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선진국 진입을 이루어내었다.
모든 나라는 위기 시점에 초기 출발의 정신과 가치.주로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러·일전쟁으로 재미를 본 일본의 군국주의 열차가 폭주하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패망에 이르는 과정을 읽지 못하고 미국과 영국을 귀축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조약이다.